다시 읽고싶은 책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프라산 2022. 4. 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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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설민석

예전에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설민석의 역사 강의를 보았다. 평상시 징비록이나 정도전 이외에 역사관련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았는데, 각 시대와 인물을 재조명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쏙 빠져들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설민석은 역사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상식을 뒤틀어준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 강사라 생각한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27명의 조선 왕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이라고 하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조금 더 발전하면 태종, 연산군, 광해군, 고종 등이 연상되는데 왕들의 업적이나 주요 사실들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말문이 딱 막힌다. 난 정말 역사에 대해서는 바보인가보다. 

금번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다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왕이라고 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지만 왕도 감정과 약점을 가진 한 인간이다. 왕의 리더쉽에 따라 국가의 분위기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들의 잘난 점은 배우고 비판해야 할 점은 과감하게 도려냄으로써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리더로써의 자질을 키워보자.

제 4대 세종, 위대한 호랑이

세종이 충년대군인 시절에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는데, 특이한 점은 책 한 권을 100번 이상 반복해서 보았다고 한다. 심지어 1,000번을 넘게 읽은 책도 있다고 하니 대단한 독서광이자 책벌레가 아닐 수 없다. 역시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가까이 한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서 세종이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독서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나도 어린 애들을 돌봐야 한다거나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자주 읽지 못했는데, 먼 미래를 위해서라도 책꽂이에 잠자고 읽는 책들을 깨워서 자주 펼쳐 보아야 하겠다.

저자는 세종이 역사에 높이 평가 받는 이유를 백성들을 사랑하는 애민(愛民) 정신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종은 풍년과 흉년을 달리하는 차등적인 공법(貢法) 제도를 실시하여 농민들이 세금을 공평하게 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여자 노비에게 100일의 출산 휴가를 부여한 것도 인정이 넘치는 행위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훈민정음 창제에서 완성된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지배층의 특권이었으나 백성들도 글을 깨우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 것이다.

국가의 대통령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도 바로 애민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면 국민들도 믿고 따라줄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사리 사욕만 채우거나 권력에 대한 욕심만 키운다면 불행한 국가가 될 것이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북한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세계 경제와의 교류에 문을 닫으면서 죄 없는 국민들은 점점 더 힘들게 살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세종대왕의 십분의 일만 있었어도 북한은 이미 변화하지 않았을까.

제 9대 성종, 모범생 호랑이

성종이 제2의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경국대전을 만들고 정치제도의 기틀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끊임없는 공부와 독서였다. 성종은 유능한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경연에 참석한 횟수가 25년 동안 9229회라고 한다. 왕이 된 이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를 했으니 모범생 호랑이라고 충분히 불릴 만도 하겠다. 경국대전은 사회의 전반적인 법을 두루 다루면서 자녀균분 상속법이나 사유권 보호 등 조선만의 독자 적인 법을 완성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국가 제도를 법에 의해 실시하는 법치 제도의 근간을 이룬 현명한 왕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모범생 호랑이의 인생도 밝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영웅 호걸이라고 했던가. 성종은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여자 문제로 결국 어려움을 겪게 된다. 첫번째 왕비인 공혜왕후 한씨는 일찍 죽게 되어 후궁이었던 윤씨가 두 번째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윤씨의 질투심이 너무나 강해서 왕이 후궁의 침소에 들르는 것조차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 왕이 총애하는 후궁들을 죽이려고 독까지 가져 다니고 성종 얼굴을 할퀴는 사건까지 생기니 성종이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겠는가. 남자, 여자 모두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제 14대 선조, 도망간 고양이

임금이라고 모두 똑똑하고 어질고 훌륭한 성품을 가진 것은 아니다. 물론 선조를 무능한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환경적인 영향도 있었다. 100년 동안 전쟁을 벌이며 군사력을 키워온 일본과는 다르게 조선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전쟁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못하였다. 덕분에 위대한 이순신 장군이 더욱 빛날 수 있었지만. 왜군이 한양을 향해 진격해 오자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궁궐을 벗어나 개성, 평양, 의주로 피신해 간다.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라고 했는데, 자식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떠할까. 요즘 말로 백성들은 멘붕이 왔을 것이다.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불타버린 경복궁처럼 임진왜란으로 쓰러져가는 조선의 운명 속에서 500년의 역사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해전에서 23전 23승의 승리를 이끈 이순신 장군 때문이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바다에 나가 죽을 때까지 싸웠던 이순신과 목숨 보전을 위해 피난하기에 급급했던 선조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가족이나 사회를 위해 나는 어떠한 인물이 되어야 할까. 적어도 가족들의 생계는 끝까지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야 하겠고, 사회에서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고 떳떳한 인물로 남고 싶다. 

제 15대 광해군, 억울한 호랑이

광해군은 세종과 성종 만큼이나 백성들을 사랑하는 훌륭한 성품을 지닌 왕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가두고 동생을 죽이는 잔인한 행동과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배후에는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인조를 지지한 서인과의 싸움이 있었으니 붕당정치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광해군을 통해서 배울점은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광해군은 세금 개혁을 통해 지역의 특산물 대신 쌀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대동법을 실시한다. 특산물의 경우 이동 과정에서 부패나 변질되기가 쉽고 고정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금으로 내기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다. 대동법 시행 이후로는 땅을 가진 사람만 세금을 내면 되기 때문에 토지를 많이 소유한 지주들은 거부했지만 가난한 농민들은 크게 환영하였다. 세종대왕도 소수의 특권층보다 다수의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광해군을 칭찬했을 것이다.

둘째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택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시 조선에 원군을 파견한 지원국이었지만 관리들의 부패로 이미 국운이 쇠한 상황이었다. 반면 후금은 북방의 여진족이 힘을 키워 세운 국가로 이미 중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명나라와 후금과의 전쟁에서 끝까지 명나라를 지원했다면 이후에 임진왜란과 같은 큰 전쟁이 다시 발생하였을 지도 모른다. 

2018년 국제 정세는 G2인 미국과 중국이 주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사드 설치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친미성향을 보이고 있으나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통상 마찰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강대국과의 사이에서 우리는 광해군이 보여준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보여주어야 하겠다.

제 22대 정조, 완벽한 호랑이

정조도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 성종과 마찬가지로 취미가 책 읽기였다. 특히나 논어, 대학, 중용과 같은 동양 철학 서적을 좋아했고, 정적이었던 노론 세력들의 암살 위협 때문이기도 했지만 밤부터 새벽까지 항상 책을 읽을 정도였다. 역시 책 속에는 우리가 원하는 진리와 이치에 대한 답이 있다. 또한 정조는 조선 시대 왕 중에서 글쓰기를 가장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다. 글을 많이 읽고 쓰는 연습을 한다면 누구나 위대해 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결심한 만큼 지속적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우니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성종하면 경국대전이 생각 나듯이 정조하면 탕평책이 생각 난다. 노론 세력은 과거 성종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왕이 되어서 측근인 남인세력뿐만 아니라 노론세력도 가까이 기용하며 균형 정치를 실시한다. 또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여 당파와 관계없이 실력 있는 학자들이라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조는 실력만 있다면 양반이 아니라 평민이나 첩의 자식들까지도 관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대표적인 예가 발명가 정약용이다. 눈에 보이는 관직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람의 진면목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정조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안목이 길러졌을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후대에 존경 받는 임금을 요약해 보면 결국 백성을 가장 사랑한 임금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비록 태종이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IQ도 높고 똑똑할지언정 세종이나 정조와 비교하여 덕이 많은 임금으로 평가 받지는 못하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념인 홍익인간과도 뜻이 연결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마음에 담고 실천한다면 좀 더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조선 시대의 성군들을 따라 독서와 글쓰기를 반복적으로 실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길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작곡가나 작사가는 노래를 남길 수 있고 유명한 예술가는 그림이나 조각품을 남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글이 아닐까. 글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실천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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