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싶은 책

82년생 김지영

프라산 2022. 4. 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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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남주

책을 잘 읽지 않던 와이프가 택배로 ‘82년생 김지영’을 주문했다. 오빠 이 책 몰라? 이거 유명한 베스트셀러야. 유명한 베스트셀러는 가급적 찾아 읽는 편이기에 나도 와이프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보게 되었다. 책 속의 주인공과 같은 82년생이자 아이를 낳고 경단녀가 된 아내가 왜 이 책에 푹 빠져들었는지 책을 절반쯤 읽을 무렵 나도 알 것 같았다. 이 시대의 젊은 아줌마들이 너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요 인물들을 들여다 보니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니 오미숙 씨는 딸 둘을 출산한 이후 셋째도 딸인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소리 없는 질책에 따라 혼자 병원에 가서 딸 아이를 지웠다. 요즘은 딸 둘이면 금메달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시대가 변하였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남자아이를 귀하게 여기던 때였다. 어릴 적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오빠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의 꿈은 뒷전으로 미루고 결혼을 해서도 봉투 붙이기, 문풍지 말기를 하며 가족을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 들었다. 한(限)이 많은 그녀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이 좌절하였을까.

전체적인 스토리는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던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국제 시장이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영화라면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의 평범한 생애를 통해 현대사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김지영의 어린 시절 (1982~1994): 

내가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갔으나 소설 속 초등학교에서는 급식이 진행되었다. 번호가 빠른 남자 아이들이 먼저 밥을 먹었다고 했는데, 시대 상황을 보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영은 50여명 가운데 번호가 30번이었으나 밥 먹는 속도가 느려 김지영을 포함한 다수의 여자 아이들은 제한된 시간에 밥을 빨리 먹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났다. 또한 남자아이들이 먼저 발표를 하고 줄을 서고 이동을 했지만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남녀 차별 문화가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직장까지 사회 전체에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자기 생각을 말해 버릇하지 않아서인지 푸념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라는 글귀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 시절에는 저랬지. 

그러나 유나라는 육성회장의 딸이 급식 순서에 대해 당당하게 건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선생님도 유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 달에 한 번씩 번호를 바꿔가며 급식을 진행한다. 80년대 후반부터 여성들의 목소리가 조심씩 크게 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나중에 여자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대목에서도 이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힘이 남녀간 질서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유나가 육성회장의 딸이 아니라 평범한 엄마의 딸이었다면 씨도 먹히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테니.

김지영의 학창시절 (1995~2000)

‘고등학생이 되며 생활 반경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보니,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았다. … 학교라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요즘 연예인 조재현, 조민기 이외에 정치인 안희정 충남지사까지 여성들의 성폭력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이루어진 성폭력이나 성폭행에 대해 당당하게 사회에 드러내고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다. 특히나 김지영의 학창 시절과 같이 과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사들의 성폭력도 많았을 것이다. 조만간 미투 운동이 중, 고등학교 선생들까지 대상으로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상관없을 것 같던 김지영 씨의 집에도 IMF의 영향이 미쳤다. … 말단 공무원 아버지가 퇴직 권고를 받았다. ‘ 1997년 IMF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80% 이상이 가정 살림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퇴직 이후에 치킨집과 빵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김지영 씨 가족이 결코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 과거 기억 속에 송곳으로 발등을 찌르는 기억 한 두개는 안고 살아갈 테니까. 

김지영의 20대 (2001~2011)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김지영이 동아리 엠티를 갔다가 남자 선배들 사이의 잡담에서 자신이 씹다버린 껌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남자는 연애를 하다가 헤어져도 저런 얘기를 듣지는 않는데 왜 여자만 저렇게 약자가 되어야 할까. 20대라고 하면 연애와 낭만이 가득한 시기라고 생각이 되겠으나 핑크빛 사랑 얘기에 빠져들 틈도 없이 소설은 줄곧 사회 문제를 찔러 댄다. 물론 세상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작가는 어디선가 나왔을 법한 얘기들을 줄줄 풀어놓았다. 

김지영도 사회의 좁디 좁은 취업문을 실감하고 어렵사리 취직을 하지만 남자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힘들게 직장 생활을 이어 간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해. 지금도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줄 알아?’ 내가 2007년 입사했던 건설회사의 경우에도 100명의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은 2명에 불과하였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 신입사원도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등 무거운 건설자재들이 왔다 갔다 하고 그보다 더 거친 현장 근로자들을 다루어야 하는게 여성들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육체노동과는 관련이 없으니 더 많은 여성들을 고용해도 되지 안을까.

결혼 그리고 이후 (2012~2015)

김지영은 평범한 회사원 정대현씨와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간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어른들은 2세가 늦어지자 질문을 해오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는 것은 분명 부부의 선택이고 결정인데, 과거부터 이어져온 주변의 간섭은 쉽게 막기 어려우리라. 김지영씨 부부는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그렇다. 출산과 육아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큰 부담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나도 남자이지만 남자들은 잘 모른다. 여자들이 육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남자도 저녁에 애들을 보기 위해 동료나 친구와 거리가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여자들만큼 다 포기할 상황은 아니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이 오면서 김지영 씨는 출산휴가만 낼지, 육아휴직을 할지, 퇴사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출산 이후 3달 간의 출산 휴가만 사용했던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이 갔다. 출산 후 예쁜 아이와 생 이별을 하고 회사에 출근하는 마음은 어떨까. 아이의 얼굴이 회사에서 줄곧 떠오르지 않았을까. 북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출산 이후에 아이를 상당부분 국가가 돌봐준다고 하는데,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대한민국도 복지 예산을 늘리고 육아 정책을 통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대현 씨와 김지영 씨는 맞벌이를 하며 전세 대출금을 다 갚았으나 계약 기간 2년이 지나자 집 주인은 보증금을 6,000만원 올렸고, 부부는 다시 대출을 받아야 했다.’ 신혼부부들이 결혼 이후 공통적으로 겪는 주택문제까지 소설에서는 짚어주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을 하고 주택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가. 요즘은 연애, 결혼, 주택 구입을 포기한 삼포 세대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전세값이 평균 5억원을 넘어서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전세금 마련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나도 고등학교 까지는 부모님께서 경제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주셨기 때문에 돈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대학교에 가서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커피숍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을 때는 연애도 사치가 된다는 것을.

김지영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소설 속 인물이라 믿기 어려웠고 책 속에서 바로 현실로 뛰쳐 나올 것 같은 인물이었다. 81년생 남자가 이 책을 읽어도 공감을 가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재미도 있었지만 가부장제, 남아선호사상, 남녀 차별, 육아, 주택 문제 등을 다루며 가슴 아픈 대목도 많았다. 육아 및 산후 우울증으로 결국 정신병 증세까지 겪게 되는 김지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까맣게 병들어 있음을 저자는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와이프에게 좀 더 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문득 81년생 이상호라는 이름으로 책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상호라는 이름은 내가 다녔던 회사에 동명이인이 7명이나 있을 정도로 흔하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들보다 조금씩 대우받고 자란 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성장해 왔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보니 사회에는 성차별 적인 요소가 너무 많았던 것을 깨닫는 내용이다. 더불어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 문제, 입사 이후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관료적인 조직 문화를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짱이니 부짱이니 하면서 힘으로 서열을 가르기도 하였고, 군대에서는 얼마나 많은 언어적, 신체적 폭력이 난무 하였던가. 또한 군대와 유사한 점이 많은 직장 문화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한층 성숙하여 진정한 선진국, 선진 시민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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